"아저씨, 여기 복사 좀 해줘!"

2024년 2월. 훈련소 3주를 간신히 버티고 꿈에 그리던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로 첫 출근을 했다. 구청이나 지하철은 헬무지, 동사무소는 꿀무지라는 선임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첫날 아침 8시 50분. 담당 주무관님이 자리를 안내해 줬다. "우리 공익 선생님, 여기 앉으시면 되고요. 주로 복사나 파쇄, 민원인 무인발급기 안내 도와주시면 돼요~"

아 ㅋㅋ 개꿀이네. 이 정도면 공익 기간 동안 자격증 3개는 따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넘어가자 평화가 산산조각 났다.

🎖️실전 경험

갑자기 등본 떼러 온 할아버지가 나한테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여기 와서 이 종이 좀 복사해와!!" 동사무소는 번호표 뽑고 창구에서 하는 거 아닌가? 왜 나한테...

복합기 앞의 대환장 파티

당황해서 네? 하고 일어났는데, 주무관님이 눈빛으로 '그냥 해드려'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할아버지가 준 건 무슨 부동산 계약서 같은 두꺼운 종이 뭉치.

복합기로 가서 뚜껑을 열고 종이를 올렸다. 버튼을 눌렀는데. '삐- 삐- 삐-'

종이 걸림 (Paper Jam)

첫날 첫 임무부터 종이가 걸렸다. 뒤에서 할아버지는 "빨리 좀 해!!" 라고 눈치를 주고, 나는 복합기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이거 잘못 빼면 계약서 찢어지는데 어떡하지?

머릿속 시나리오 1: 확 잡아당긴다 → 찢어짐 → 할아버지 극대노, 뉴스 출연

머릿속 시나리오 2: 주무관님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 "첫날부터 복사도 못하는 폐급" 낙인

머릿속 시나리오 3: 조심스럽게 살살 뺀다 → 시간 오래 걸림 → 할아버지 사자후

결국 3번을 택하고 5분 동안 종이와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 종이는 안 찢어졌지만, 복합기 토너 잉크가 내 흰 셔츠에 다 묻어버렸다.

동사무소는 꿀무지가 아니다

그날 오후 내내 서류 파쇄, 민원인 체온 측정(코로나 한참 지났는데 왜 하는지 모름), 무인발급기 지폐 걸림 해결까지 온갖 잡일을 다 했다.

퇴근할 때 주무관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사주시면서 말했다. "오늘 바쁘셨죠? 월요일이라 그래요~ 근데 내일은 더 바빠요~ ㅋㅋ"

💡공익 첫 출근러를 위한 리얼 팁
  • 꿀무지란 없다. 내가 있는 곳이 곧 헬무지다.
  • 흰옷 입고 가지 마라. 먼지와 토너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 모르면 안 건드리는 게 낫다. 복합기 잼 걸렸을 때 어설프게 당기다 원본 찢어먹으면 답도 없다. 뻘쭘해도 무조건 주무관님 소환해라.

공익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육체적 고통은 현역이 더 크겠지만,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웬만한 훈련소 유격 뺨친다. 특히 구청이나 동사무소 복지과는... 할말하않. 존나 힘들다 진짜.

에디터